
갈대 속의 영원 / 출판사 소개
수천 년 전에 쓰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해 본다면 어떨까요.
인쇄술 발명 이전에는 모든 책이 "유일한" 책이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인쇄라는 행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책을 복제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필사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하나의 텍스트가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실제적인 위협이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실제로도 수많은 책들이 벌레와 습기, 화재에 의해 사라졌을 것입니다.
문자가 기록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최초의 책은 돌일 것입니다. 돌은 영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에 문자를 새긴다는 행위 자체의 어려움을 생각해본다면, 돌이 책으로 기능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무게가 800킬로그램에 달하는 로제타석을 책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이 소지할 수 있고 이동이 가능한 형태의 최초의 책은 태블릿, 즉 점토판이었습니다. 인류 문명의 발생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점토가 풍부했습니다. 수메르인은 약 5천년전에 점토판에 글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점토판의 크기가 20센티미터 정도였으니, 지금의 책, 그리고 전자 태블릿과 비슷한 크기였습니다. 지금의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이스라엘, 튀르키예 등 수많은 지역에서 점토판이 활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점토판은 무게에 비해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의 발명은 가히 파괴적인 혁신이었습니다. 이 갈대과 식물을 압착하여 만든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가볍고 탄력이 있는데다, 무엇보다 얇았으며, 둥글게 말 수도 있었습니다. 같은 부피에 저장할 수 있는 글의 양이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3천년에 파피루스에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원전 1천년 경에는 근동지방까지 파피루스가 전파되었습니다. 하지만 파피루스에도 약점이 있었으니, 습기와 불에 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집트의 건조한 기후에서는 잘 보존되었으나, 유럽의 습기에는 쥐약이었으며, 최대 보존 연한이 고작 200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이집트 연안에서만 원재료가 생산되다보니, 파피루스는 이집트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는 일종의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되어 널리 보급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기원전 2세기 경 또하나의 대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의 튀르키예 페르가몬에 있는 도서관을 시샘한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파피루스 공급을 중단시켜 그 도서관을 굴복시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페르가몬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고대 동양의 기술을 차용해 가죽에 글을 쓰는 법을 완성했습니다. 이 도시의 이름을 따서 "페르가메나 차르타(pergamena charta)"라고 불리운 이것이 바로 양피지입니다.
150쪽짜리 책을 만들려면 열 마리에서 열두 마리의 가축을 도축해야 했던 양피지의 시대를 지나, 구텐베르크를 거쳐 마침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지식의 전파를 막고 정보를 독점하고자 했던 권력자들의 욕망, 현대에 들어서는 영화, TV 등 여러 대안적 매체의 위협을 견뎌내고 버틴, 한 권의 『일리아스』가 힘겹게 우리 눈 앞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책은 이렇듯 저항하고 꿈꾸며, 연결하는 발명품입니다.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가 갈파한 바와 같이, 책은 숟가락, 바퀴, 망치, 가위와 같은 범주에 속합니다. 즉, 한번 창조된 이후 이보다 나은 것이 등장한 적이 없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인류가 존재하는 한 책 또한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